건담 수성의 마녀 1~6화 포스터가 걸린 방


  넷상에서 반응이 핫해서 찾아 봤는데, 프롤로그를 거르고 본 첫인상은... 미술과 연출이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요즘 애니스럽고, 무엇보다 건담 시리즈 특유의, 세계는 우주는 인간은! 그러니까 나는! 이런 식으로 내용 없이 정념만 가득해서 질러대는 1호선 할저씨 쉰내가 느껴지지 않아서 좋긴 했다. 말 나왔으니 말인데 저렇게 내용없는 개똥철학으로 제 좁은 세계관을 웅변하는 '건담' 특유의 꼰대냄새는 최신작이라 할 '섬광의 하사웨이'나 야쿠자물로 장르 변환을 의도한(?) '철혈의 오펀스'에서도 전혀 나아지지 않아서 답답했는데, 본가 적통작이라 할 '수성의 마녀'에서 아직까지는 풍기지 않고 있어서 신선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밋밋했다. 3화까지는 말이다. 고딩들이 학교 안에서 전술병기로 사적 결투를 벌인다는 설정이 생뚱맞으면서도 신박하긴 한데, 노골적으로 '소녀혁명 우테나'의 오마쥬이지만 그 20여 년 전 작품보다도 이야기의 박력이 없는데다 캐릭터들도 진부하기 짝이 없어서 따분할 따름이었다. 장난감을 팔아먹기 위해 로보트 액션에 힘을 준 티는 나름대로 나는데, 그게 설정과도 맞물려서 진짜 기계 몸체가 프로레슬링을 벌인다기보다는 그냥 정교하게 도트 찍은 게임 화면 같아서 얄팍해 보이기만 했다. 1화에서 비트를 전개하는 컷 몇 개 정도가 인상적이었지만 그 뿐.


  그런데 이걸 계속 봐야되나 어째야 되나? 싶을 즈음에서 5화가 어라? 싶었다. 주인공 슬레타가 '어리버리한 또라이 여자애'라는 한 마디로 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캐릭터가 얇아서 별로였는데, 얘가 그 얇은 설정에 과도하게 충실해서 본격적으로 또라이짓을 벌이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그때까지 등장인물들 중에 유일하게 좀 흥미로웠던 엘란 케레스가 얼음왕자님 가면 속 맨얼굴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자 이야기가 처음으로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6화가 진짜 작품이었다. '수성의 마녀'는 이런 종류의 광기를 이번작의 정체성으로 삼을 계획인가 보다. 주인공은 결투 전날 다짜고짜 적진에 쳐들어가서 결투상대와의 대화를 요구하고 안 먹히자 오픈채널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댄다. 결투장에서는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닥돌을 해대더니, 갑자기 자기가 발사한 비트병기들 하나하나에 말을 걸면서 무당질을 하고(비트병기들이 진짜로 살아있는 존재일 수 있겠다는 의심이 강렬하게 들었다)! 우주공간에서 결투상대와 맨몸으로 만나서는... 마침내 충격의, 빔포에 불이 들어오면서 "해피버스데이 투..." 장면에 이르면, 내가 도대체 뭘 보고 있었던가 싶으면서 결국에는 내가 이 미친 이야기를 끝까지 볼 수밖에 없겠구나 마음을 먹게 만들고 만다.


  아직 초반이지만, 제작진이 뭔가 마음 단단히 먹었구나 싶어지는 시리즈. '건담' 시리즈의 정체성은 70년대의 첫 작품 이래로 너무나 일관되게 '광기에 가까운 똘기'일텐데, 적통답게 심상치 않은 매운맛을 초장부터 보여주고 있다. (하품 날 정도로 밋밋하던 연출에서 갑자기 이러니까 더 당황스럽다) 어쩌다 보니 프롤로그를 6화 이후에야 보게 됐는데, 프롤로그에서 4살 꼬맹이가 건담의 콕핏에서, 격추되는 적기를(그것도 아마도 자기 손으로 보내버린...) 손가락질하면서 "아 너무 예뻐요!" 해맑게 웃는 장면을 뒤늦게 확인하고 나니, 아 이거 뭔가 단단히 노리는 게 있는 작품이구나, 머리 텅 빈 종이인형 같이 생긴 여자애들이 주인공들로 나오는 만큼... 어쩌면 '소녀혁명 우테나' 짝퉁으로 시작해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계승작 비슷하게 마무리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뒤가 기대되는 시리즈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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