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핌퍼넬 (엠마 오르치) 책들이 쌓인 방



  '가면 쓴 슈퍼히어로물'의 원조라는 작품. 아주 어릴 적에 장미꽃 가면인가 장미꽃 백작인가 뭐 그런 제목으로 어린이용 버전을 보았고, 이두호 화백(아마도) 이름으로 해당 이야기의 컨셉과 몇몇 트릭을 조선시대로 옮겨온 만화 연재물도 있었던 것 같다.

  키 크고 잘생긴 영국남자가 프랑스 혁명정부 소속의 음침한 첩보원을 물먹이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혁명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하는데, 주인공이 '스카라무슈'처럼 민중의 편에서 귀족과 싸우는 게 아니라, 구체제 귀족의 편에서 혁명정부의 공포정치와 맞서싸우는 이야기라는 점이 이채롭다. 혁명의 시기, '전통과 미덕이 살아있는' 영국 귀족사회 사교계의 인사이더가 몰래 '배트맨' 같은 어둠의 히어로가 되어서는 지명수배된 프랑스 귀족들의 탈출과 망명을 돕는다. 배경으로 영국 사교계의 촌스럽지만 여유롭고 인간적인 모습과 혁명기 프랑스의 천박하고 살풍경한 모습이 대비되어 묘사되는데, 작품 속 묘사만 보자면 냉전기 '자유진영'의 부르조아 007이 춥고 배고픈 공산국가의 탄압받는 인재들을 아오지탄광에서 꺼내오는, 뭐 그런 이야기. 이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80년대 소년만화에서 종종 활용됐던 건 당시의 소년취향 반공물에 이식하기 딱 좋게 세팅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상깊었던 점 두 가지:

  (1) 가면 슈퍼히어로의 원조라면서 주인공 '스칼렛 핌퍼넬'은, 물론 혼자 완력으로 정부 요원 대여섯 명은 우습게 때려눕힌다는 설정이지만, 사실상 아무런 물리적 액션 없이 신출귀몰한 행동력과 지략만으로 갖가지 어려운 미션들을 클리어한다. 실제 사용되는 지략은 화려한 쇼맨십으로 적의 시선을 한쪽에 집중시킨 후 성동격서하는 사실상 원패턴 전략인데, 아무리 옛날작품이라도 금방 식상해질 수 있는 원패턴 트릭을 그때그때 시점을 달리하는 일종의 서술트릭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한다.

  즉 주인공을 쫓는 자, 구경꾼, 관찰자와 같은 인물을 내세워 독자(내지 관객)와 같은 곳을 보게 한 후, 그 앞에 화려한 눈속임의 마술쇼를 공연하여 혼을 빼놓는 방식이다. 마술쇼와 마찬가지로, 독자 내지 관객은 다채로운 볼거리 앞에 유쾌하게 사기당하는 쾌감을 즐기게 된다. 이 작품이 소설보다 뮤지컬로 먼저 큰 히트를 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대규모 공연예술에 최적화된 스타일이다. 원조 슈퍼히어로의 무기는 기본적으로 화려한 카리스마의 쇼맨십인데, 울긋불긋 찬란한 복장의 코믹북 슈퍼히어로들 역시 이 부분을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다고 분석될 수 있겠다.


  (2) 민중의 편에 선 혁명영웅보다, 귀족의 비쥬얼과 카리스마를 몸에 두른 구체제 히어로(반동영웅?)의 간지가 아무래도 훨씬 우월해 보인다. 이래서 히어로물, 서브컬쳐는 아닌 척해도 보수적이고 퇴폐적일 수밖에 없나 보다. 제작진이나 향유층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그쪽이 더 간지날 수밖에 없으니까. 슈퍼히어로는 쇼맨십 빼면 시체나 다름없고, 무대를 휘어잡는 쇼맨십은 일반적으로 좌파보다는 우파의 미덕이다. 사회의 가장 비천한 곳에서 남루한 이들과 함께하는 혁명영웅보다는, 구체제의 낭만과 우월의식을 몸에 두른 퇴폐적 영웅이 무대에서 더 매력적이기 쉬우니까. 서브컬쳐 영웅의 '자기희생'도 어디까지나 우월한 개인의 시혜적 액션이라는 점에서 우파 이데올로기에 더 맞는다. 아니, 애당초 '영웅'이라는 개념 자체가 좌파적이라기보다 우파적이고,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 내지는 심지어 귀족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을 혁명으로 인한 망명귀족 출신 작가의 걸출한 서브컬쳐 작품을 읽으면서 새삼 하게 되었다. 요컨대 '스칼렛 핌퍼넬'은 일반적인 평 그대로 셔브컬쳐 히어로물의 원조이자 마음의 고향인데, 그것이 원조인 이유는 주인공의 쇼맨십만큼이나, 그것을 가능케하는 시대착오적 귀족정신, 민중에 대한 멸시, 반동적이고 퇴폐적인 욕망에 있다고 나는 읽었다. 물론 주인공은 영국귀족이되 또 한 명의 주인공이자 화자(혹은 사실상의 주인공? 사이드킥?)가 프랑스 노동계급 출신이며 기본적으로 (공포정치에는 반대하더라도)공화주의자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다. 그런 게 없이 빤스까지 벗어던진 구체제 찬양물이었다면 아무리 귀족주인공이 간지가 나더라도 인기를 끌 수 없었겠지.


  어쩌면 20세기, 21세기의 서브컬쳐 히어로물 상당수는 좌파 내지 좌파 워너비 아티스트들의 남몰래 억압된 선민의식, 대중멸시, 퇴영적인 영웅주의가 다소 비틀린 방식으로 형상화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억압된 빻음이 비틀린 방식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는 비난의 대상일지 몰라도 미학적으로는, 그리고 상업적으로는 중요한 미덕이다. 진짜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야기들은 대부분 그런 데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빻음이 없이는 매력이 없고, 그렇다고 빻은 게 발가벗은 채 노출되어도 재미가 떨어진다. 빻음과 빻음에 대한 억압(위선 내지 허위의식이라고 해도 좋다)이 없이는 진짜 매력적인 이야기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의 빻음도, 또 그 빻음을 없는 척, 아닌 척 포장하는(요즘은 'PC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오덕용어로 많이 표현되는)위선도 잘 포장되고 완성도를 갖출 경우 너무 나무랄 게 아니다.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없어지면 작품이 생명력을 지니기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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