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시대, 인간의 일 (구본권) 책들이 쌓인 방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었고, 뒤로 갈수록 조금 고통스러웠다. 
  내용 자체는 '무난하게 옳은 말'들로 되어 있고, 나온지 4년이 된 지금에는 다소 뻔한 이야기로 여겨지지만 그 만큼 정론이기도 하다. 사회에 영향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나면 곧장 뻔한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게 정론의 힘이자 한계이니까. 저자가 확실히 글빨이 있고, 자료 수집도 성실하게 되어 다소 잡다하지만 어디 가서 유용하게 주워섬길 수 있을 만치 흥미로운 사례들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꾸만 앉은자리를 뒤척이게 하고, 일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읽기 힘들었을 요소들이 있었다. 그냥 개인적인 편견인지도 모른다.
  첫째, 글이 아주 전형적인 '한겨례 칼럼체'를 띠는데, 말하자면 '눈에 띨만한 사례들 나열 -> 그에 대한 통념적 반응 정리 -> 사례와 통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 최종 결론'으로 정리되는 방식이다. 사례들은 글의 메시지나 최종 결론에 그다지 필연적이거나 필수적이지 않아서 그냥 주의 환기나 상식 과시 정도로 활용되는 정도이고 통념 정리는 지루하다. 사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캐치하려면 내용을 대충 다 넘기고 각 챕터의 마지막 한 두 페이지만 읽어도 충분하다. 
  딱 신문 연재 칼럼의 글 스타일을 조금 분량만 늘려놓은 스타일이다. 앞부분의 사례 나열은 지루하고 뒷부분의 결론은 평이하면서,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상식적이다. 이게 일간지나 주간지의 칼럼이면 어쩌다 한 꼭지 부담없이 읽고 넘기면서 흥미로운 사례 한 두 가지나 생각 못 했던 관점 하나쯤 환기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이런 꼭지가 열 개씩 반복해서 이어지는 단행본이니 좀이 쑤신다. 결국 뒤로 갈수록 사례들이 잡다하게 쌓일 뿐 단순한 메시지의 중언부언이 되게 마련이고.

  둘째, 아닌 척해도 기본적으로 기술과 근대성에 대해 적대적인 시선을 깔고 간다는 관심법스러운 느낌이 자꾸 든다. '기술의 발달 소개 -> 그렇다면 인간의 역할은?' 운운하는 오래된 구성이 어쩌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문제의식을 깔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하여튼간에 꼰대스럽다. 책의 최종 결론은 대략 "로봇으로 대표되는 현대 기술과 경쟁하지 말고 공존할 것이며, 인간만이 지닌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고 인간성을 성찰하자"로 정리되는데, 아니 '기술(로봇, 인공지능, 디지털 사회 기타등등)과 공존하자!' 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 꼰대소리인가? 공존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같은 말을 "동성애자와 공존하자", "스마트폰과 공존하자", "한겨례신문과 공존하자" 로 옮겨놓으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공존하자!'라 결론을 내리는 것 자체가 해당 대상을 여차하면 배제해야 하는, 혹은 배제할 수 있는 무언가로 놓고 -물론 결론의 맥락은 '기계보다 더 잘할 생각하지 말고'이지만, 아니 어떤 운동선수도 기계커녕 어지간한 짐승보다 근력이나 스피드가 빨라질 수 있다는 수 있다는 꿈을 꾸지 않는데, 기억력이나 분석력, 체스실력 등에서 기계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현대 기술을 배제할 수 있다는 넌센스 아닌가- 사유를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러다이트식 운동을, 안아키를, 자연인을, 유사과학을 통한 '혁신', 전통적 공동체로의 회귀를 꿈꾸는 진보 꼰대의 스멜을 떨칠 수 없다. 현대 기술에 대한 시각이 이렇게 오만하고 자아과잉이라면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논할 수 없다. 결국에 '인간적인 것은 인간적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식 군내 나는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다.

  교양 필독서로 명성이 높은 책인데, 나는 이 책이 그렇게 고평가되는 배경에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식은 시의적절하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수밖에 없는 영역을 영리하게 다루었는데, 문화센터의 아저씨아줌마들 소일꺼리 교양서로는 최적화되었을지 모르겠다. 생기부 데코를 위한 중고생 교양서로 각광을 받던데, 실제 중고생들한테는 이 책의 따분함이 어떻게 다가갈지(의외로 걔들한테는 신선할런지?) 궁금하다.



p.s) 단, '제2의 기계시대, 내 직업은 1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한 챕터만은 인상깊고 흥미로우며 관점도 신선하였다. 인공지능 시대라고 막 로봇 연애에 망각의 권리에 여가선용 문제까지 꼰대질하지 말고, 사회 변화와 개인 직업이라는 한 주제만이라도 천착해서 깊이 있게 다루었다면 지금같은 베스트셀러는 못 되었을지 몰라도 내 취향에 훨씬 맞았을 것 같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