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 킹 (2019) 포스터가 걸린 방



  분명히 인정할만한 요소는 있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라가버린 원작을 최신 기술로 재현했다는 점, '정글북' 이상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동물 CG와 디즈니 뮤지컬의 조합이 흥미롭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낸 그림들이 몇몇 장면에서는 비명을 지르고 싶을 만치 아름답다는 점 등. 분명히 영화관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각적 쾌감의 한 지평을 보여주었다. 그런 만큼 준수한 흥행 성적을 예상하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 20여년 전에는 원작의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좋은줄 몰랐는데 이번에 새삼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 낡은 가부장 서사이긴 해도 '네가 누군지 (가부장제적 맥락에서) 기억해라' 라는 메세지는 여전히 감정적 울림이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면에서는? 안타깝다. 20여년 전 가부장 이야기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지만, 그게 지금 시대에서 여전히 유효하냐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2019년은 알라딘이 아니라 자스민이 술탄이 되고, 찰스 자비에 영재학교가 진 그레이 영재학교로 바뀌는 시절이다. 심바가 단지 선왕의 남자 적통이라는 이유만으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양도받는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낯이 뜨거워진다.

  만드는 입장에서도 낯이 뜨거우니까 하이에나 진영에 여자 리더를 추가하고 사라비(심바네 엄마)의 역할을 늘리는 등 어떻게 해보려고는 하는데, 문제는 그러기에 기존 '라이온 킹'의 이야기가, 폐쇄적일 정도로 자체 완결성이 뛰어난 구조라는 점이다. 2019년 상황에 맞춰 어떻게 바꿔보려고 해도 일관성을 지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 어려웠을 것이고, 어떻게 이야기를 고쳐봐도 고친 이야기가 원작만 못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결국 영화는 몇 가지 시도를 하려다 말고 걍 원작의 구도로 돌아와 버린다. 모글리가 정글에서 불도, 심지어 칼조차도 써서는 안 되었던 '정글북'의 과감한 21세기화(나는 이게 메세지 면에서는 원작의 제국주의보다 더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와는 대조적이다.


  그 결과 영화는 전체적으로 언밸런스하고, 심지어 어설퍼 보인다. 많이들 '내셔널 지오그래피 같다'고 지적하는 화면의 때깔은 그것 자체로는 놀라운 성취이고 아름답지만, '라이온 킹'의 가부장 서사와 맞지 않는다. 원작이 거의 '(신화적)원형' 그대로의 이야기를 형상화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디즈니 애니 캐릭터들이 인간이면서 동시에 동물인 독특한 캐릭터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화면에 나타난 그들의 이야기는 누가 봐도 사바나의 사자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우화였고, 그래서 인간 왕가인 동시에 사자 프라이드이고, 인간 왕가도 아니면서 사자 프라이드 자체도 아닌,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 모든 것일 수 있는 영역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모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나풀거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피 화면의 동물들로는 그런 초현실적 보편성을 그려낼 수 없다.

  이를테면 원작에서 심바, 날라, 품바, 티몬이 사바나로 돌아와 프라이드를 응시하는 장면은, 모든 게 우화라는 점이 이미 각인된 상태였기 때문에, 네 주인공을 화려한 색상의 화면에 채우는 것만으로 돌아온 영웅의 비장미를 진지하게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장면을 내셔널 지오그래피 버전으로 재현한 결과, 너무나 웅장하게 재현된 광활한 평원에 너무 사실적으로 그려진, 고작 네 마리  짐승이 세상을 바로잡느니 어쩌느니 조잘대는 게 그냥 초라하고 어설퍼 보일 따름이다. 사실적으로 묘사된 사자가 노래를 부르고 뮤지컬을 하는 게 어색하고 웃기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과시하는 기술적 성취가, 정작 영화가 하려는 이야기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피 화면의 리얼함과 웅장함을 살리려면 '시튼 동물기'에 나올법한 보다 리얼한(내지는 그래 보이는) 이야기를 담아야 했다. 그게 아니고 현대의 햄릿, 정글에서의 스타워즈 내지 아더왕 이야기를 다루려 했다면 좀 더 메타 현실스러운 시각적 형상화를 거쳤어야지, 자연 다큐멘터리같은 화면이어서는 안 되었다. '정글북'은 이것보다 훨씬 더 소박한 이야기를, 그것도 나름 21세기식으로 변형된 방식으로 진행하면서도 우화임이 분명히 드러나는, 상대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CG를 활용했었고 그래서 영화는 현실과 현실 아닌 것의 중간지점 어딘가를 그려내면서 상대적으로 어색함이 없었다. '라이온 킹'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어색하고 언밸런스하다. 현실 그대로인 척하는 화면에, 너무나 현실일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안이한 리메이크라고 욕을 먹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욕심이 과했던 게 아닐까 싶다. '현실의 그림'과 '현실 너머의 이야기'를 동시에 살릴 수는 있지만, 그 사이에는 어떻게든 분명한 벽이 있어야 양쪽이 모두 살 수 있다. 이번의 '라이온 킹'은 '이곳'과 '저곳'의 거리를 지나치게 가까이 두었다. 그 결과 현실의 생생함은 어색해지고 현실 너머의 '원형'은 우스꽝스러워졌다. 좋은 시도이고 훌륭한 야심이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리고 21세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기에 라이온 킹의 가부장 이야기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적어도 많이 난해할 수밖에 없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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