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쿨루스 책들이 쌓인 방





  '코로시야 이치'(이걸 '살인청부업자 이치'라고 번역하면 왜 이렇게 혀가 꼬이는 것 같을까?)를 충격적으로 본 게 엊그제 같은데, 같은 작가의 후속작이 벌써 어떤 사람들한테는 '추억의 작품'이 되어 있었다. 내가 이제 이렇게 업데이트가 느리다.

  '코로시야 이치'로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한 야마모토 히데오가, 정말 자기 하고싶은 걸 막 해버렸다는 느낌. 오랜 기간동안 연재된 꽤 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탄탄하고 짜임새 있다. '코로시야 이치'가 막장까지 순식간에 달려나가는 속도감이 일품이었다면(그래서 뒷부분, 특히 막장 쌍둥이가 나오는 대목은 좀 질리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호문쿨루스'의 전개는 같은 작가 맞나 싶게 차근차근하면서, 집요하다. 도무지 시각화되기 어려울 것 같은 악몽들을 굳이, 억지로 시각화하는 방식은 영감 같은 게 느껴지는 탁월함은 아닌데, 집요하고 부지런하다. 상담심리학의 만화교과서와 같달까. 일종의 '광기'에 대해 다루면서도 광기를 채널링하는 게 아니라, 교과서적으로, 자상하게 설명해 나가는 방식이다. 관련 교수님들이 좋아하고 교양 강좌의 부교재로 쓸법한 만화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타인의 뒤틀린 부분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철저하게 자신의 유사한 뒤틀림과 연결해서 이루어진다는 설정. 즉 영혼의 뒤틀림은 유사하게 뒤틀린 영혼을 통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다는 시각이었다. 주인공의 '호문쿨루스'는, 세상에서 가장 꼬인 영혼을 갖고 있는 주인공이 자신의 꼬인 영혼을 통해, 유사하게 일그러진 타인의 내면을 자기 것과 유비추리해서 이해하는 방식이다. 주인공의 시야 속에서 세상사람들은 변형된 자의식과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로 나뉘는데, 그게 알고 보면 비정상인인 '호문쿨루스'와 정상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무언가 주인공의 것과 유사하게 꼬인 부분이 있는 사람을 주인공이 알아보게 되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모든 타인은(특히 영적으로 병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거울로 존재한다.

  이것은 '어딘가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 자기 병 고치려다가 전문가가 되더라' 라는 속설의 상담심리학쪽 상식(?)이기도 한데, 나한테는 영매, 무당 이야기의 심리학적 해석이라고 여겨졌다. 남에게 들린 귀신을 보는 이는 반드시 스스로 귀신에 의해 오염(?)된 사람이며, 자신에게 들린 귀신을 통해 남을 지배하는 귀신을 본다. 그래서 남의 귀신을 쫓아내더라도 그걸 가능하게 했던 자기 귀신이나, 쫓아내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오염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호문쿨루스'가 창작 과정에서 참고한 자료들은 상담심리학쪽 출처겠지만, 실제 이야기를 만들고 시각화하게 된 영감과 통찰은 다분히 '그쪽 분야'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던 이 작품의 충격적 결말은 이 만화가 기본적으로 상담심리가 아닌 영적 소통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딱히 이 결말이 비극적이거나 파국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주인공 나코시는 끝없이 타인을 보고싶어했고, 타인을 봄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려 했다. 작품의 결말은 결국 이러한 시도의 그 나름의 성공, 극한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이야기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나코시에게 이 이상의 다른 결말이, 더 나은 미래가 가능했을 것 같지 않다. 나코시는(또한 언뜻 보면 희생자로 보이는 나나코 역시)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적 소통의 세계를 추구했고 찾을 수 있는 답을 얻었다. 어차피 손과 발로 움직이는 이 세상에서, 영의 세계에 대해 필요 이상 들어가 버린 이는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 한 몸으로 두 세상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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