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과 와스프(2018) 포스터가 걸린 방



  영화는 재미있게 보았다. 슈퍼히어로물이 많이 식상해진 것도 사실이고, 영화가 그리려고 하는 감정이 진지할수록 그 식상함이 더해지게 마련인데, 이 시리즈는 의도적으로 힘을 뺀 개그물 컨셉이라 그런대로 즐길 수 있다. 여전히 지루하지 않게 통통튀는 개그 연출이 좋았고, 폴 러드가 분한 앤트맨(스콧 랭) 캐릭터가 무척 귀엽다. 미셀 파이퍼 온니의 인간같지 않은 미모는 여전해서 30년만에 이세계에서 돌아온 왕년의 히로인이라는 설정이 별로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고.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앤트맨이 마이크로한 공간에서 구르고 뛰고 샤워기 물을 뒤집어쓰고 하는 걸 4D로 경험할 수 있었던 전작의 신선함이 그 이상 업그레이드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개그 컨셉으로 설정의 한계와 '어벤져스 월드' 자체의 진부함을 얼버무리는 시도 자체는 좋았는데, 그렇다 보니 이야기가 조금만 진지한 쪽으로 가도 그냥 어색하다. 특히 갈등이 해결되고 대립하던 등장인물들이 화해하는 클라이막스 부분은 심하게 지루해진다. 비슷하게 맘먹은 개그뽕빨물로 갔어도 '토르-라그나로크'같은 경우 설정에 대한 고민과 재해석으로 인해 음미할 여지가 있었는데, '앤트맨과 와스프'의 경우 전작에서 벌써 충분히 우려내 버린 '가족의 소중함'말고는 딱히 배치할만한 철학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메인빌런이라고 할 고스트가 완전히 낭비돼 버렸다. 헤나 존 케이먼의 열연과 공을 들인 액션에도 불구하고 이 캐릭터는 재미도 매력도 의미도 없는 병풍,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자연재해 배경 같은 게 돼 버린다. 재닛(초대 와스프)이냐 에이바(고스트)냐, 둘 중에 누굴 살리는 게 옳은가? 30년 전에 세상을 구했지만 지금은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가공인물일 수 있는 누군가와, 바로 그 세대 어른들의 욕심때문에 상상 못할 고통과 생존의 위험을 느끼는 지금 눈앞의 젊은이 중에, 과연 누구를? 뭐 이런 갈등구도로 고안된 것 같지만 실제 이야기 속에서는 가족의 소중함 속에 걍 묻혀버렸고, 고스트의 투쟁도 살짝 맛이 간 젊은 여성의 히스테리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진짜 클라이막스였어야 할? 에이바와 재닛의 만남은 그냥 빨리감기로 넘어가고 싶은 뻔하고 오글대는 장면이 되어 버렸고.

  그럴 거면 고스트는 그냥 삭제되는 게 나았다고 생각된다. 고스트의 극중 역할은 사실 소니 버치와 '진실의 약' 패거리들이 나눠 담당하면 충분했다. 사실 그 패거리쪽이 그나마 더 매력적(혹을 덜 무의미)인데다가 이 시리즈의 정서와도 맞으니까. 굳이 캐릭터를 짜고 비싼 배우들을 캐스팅했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고스트라는 초능력자를 어떻게든 프렌차이즈 상품으로 만들려는 시도였는지 모르겠다. 뭐 후자 쪽이겠지. 고스트는 여러모로 진실의 약 패거리랑 편먹는 게 효율적이었는데, 그랬다가는 3류 악당 냄새가 묻어버려 재활용하기 곤란하다고 생각한 듯. 문제는 그러느라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포스터 박사 캐릭터가 무의미하게 추가되어 버렸고.


  그런 점에서 아주 개인적, 감정적으로다가, 로렌스 피시번 아저씨는 장르물에서 좀 그만 보고 싶다. 'CSI'이든 '한니발'이든 ''존 윅(2편)'이든, 일단 이 아저씨만 나오면 이야기의 맥이 끊기고 지루해진다. 이야기 안에서 적절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호통치는 할저씨마냥, 맥락에 전혀 안 맞는 자기존재감만 과시한다는 느낌이다. '앤트맨과 와스프'에서도 이 아저씨의 역할과 연기는 묵직한 감흥을 주지도, 그렇다고 그냥 무해무익한 배경으로 소비되지도 못한 채 부담스러울 따름이었다. 사실은 전혀 들어갈 이유가 없는 캐릭터인데, 배우가 연줄 동원해서 낙하산 들어온 것 같달까? 아니 다들 가족드라마, '앤트맨과 좀도둑들' 시트컴을 찍고 있는데 혼자서 "난 널 절대 포기할 수 없어!" 리어왕 내지 모피어스 연기를 하고 있으면 어떡해. 괜히 옆에서 개그치던 젊은 친구들만 갑분싸 될 것 같고. 1호선 할저씨는 확성기를 끄고 클럽(콜라텍 내지 코인노래방에 가까워 보이지만)에서 나가시라.


  어쨌든 이 시리즈는 이제 스콧 랭의 귀여움 하나로 연명한다는 느낌인데(전와이프의 현남편이나 자길 감시하는 FBI요원까지 홀딱 빠지게 만드는 마성의 남자라니), 여기서 더 이상의 이야기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스콧 랭의 앤트맨은 어벤져스 유사신화에서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지만, 독자 시리즈나 특히 와스프의 경우 더 이상의 상품가치가 있을까? 알 수 없다. 엔딩 롤의 "앤트맨과 와스프는 돌아올... 까요?" 멘트에는 어쩌면 그런 의미까지 함축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