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오브 워 (2018) 포스터가 걸린 방


  PS2와 PS3로 나왔던 '갓 오브 워' 시리즈는 특유의 맛 간 정서가 중요한 인기 비결이었다. B급 악역처럼 생긴 쌩양아치 새디스트 주인공이 그리스 신화 속 신, 영웅, 거인, 괴수, 일반인들을 닥치는 대로 도륙하는 연출이 상상 이상의 고퀄로 진행되어서, 유저들은 굉장히 음험한 아드레날린으로 '에이 썅 다 죽여버려!' 욕망을 발산하는 게임이었다.

  문제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이게 어쩔 수 없이 인플레되어 버려서, 나중에는 주인공의 무의미한 폭력에 유저들도 학을 띄게 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PS3로 나온 '완결편' '갓 오브 워3'에서는 뒤로 갈수록 돈을 쳐바른 고퀄을 즐기면서도 넌덜머리가 났다. 그리스 신화에 깔린 고전의 아우라를 찢어발기면서 신화 속 인물들을 학살하는 카타르시스가 매력 포인트였는데, 나중에는 학살당하는 캐릭터들의 매력도 주인공한테 신나게 쥐어터지는 역할로 아이텐티티가 고정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되고, 이게 뭐랄까 '어떻게 더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죽일까?'에만 주안점을 두는, 무슨 학살포르노 게임 같아졌기 때문이다. 3편의 엔딩은 제작진도 그 점을 느꼈는지 그런 지겨움과, 그럼에도 그거 말고 달리 할 게 없다는 씁쓸한 절망감이 반영되어 있었다.


  5년만에 새로 나온 신작은 그래서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주인공이 유명한 신들을 때려죽인다는 충격으로는 이제 식상한데다 주인공을 포함한 캐릭터들의 매력에도 단물이 빠질만큼 빠졌다. 내가 관계자라면 걍 해당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다른 아이템을 찾았을 것 같다. 그런데 제작진은 다른 강수를 두었다. 주인공의 무의미했던 학살극을 하나의 '(흑)역사'로 그냥 받아들이고, 신화 속 세상에서 수백 년이 흘렀다는 설정으로 배경을 그리스 신화에서 북유럽 신화로 슬그머니 옮긴 후, 훨씬 나이가 든 주인공이 그런 흑역사를 (유저들과 함께)넌덜머리내면서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서사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출시 후 한 달 동안의 상업적, 비평적 반응과 직접 플레이해본 경험으로써 판단컨대 이 시도는 놀랍도록 멋지게 성공했다. '갓 오브 워' 시리즈는 이로 인해 새 활력을 얻었고, 이 에너지는 제작진의 포부대로 이 시리즈에 유사한 대작 타이틀 서너 개는 더 덧붙일 수 있을 만한 추진력으로 충분해 보인다. '신화 속 신들을 막 죽인다'는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기에, 원래부터 신들이 서로를 처참하게 죽여대는 북유럽 신화 배경은 적절한 선택이었고, 북유럽 신화 특유의 바이킹 정서에 수염 기른 주인공은 무척 어울린다. 게다가 디즈니의 초거대 프로젝트('어벤저스')에 활용될 정도로 대중화되어버린 북유럽 신화 이야기를 재해석한 방식도 무난하게 현대적이고, 과하지 않다.

  많이들 하는 해석 그대로, 2005년 이후 이 게임 시리즈를 즐겨온 유저들도 나이를 먹었고, 시리즈는 유저들의 나이듦에 맞춰 이야기와 연출을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제작진들부터가 13년동안 여러 부침을 겪으면서 나이를 먹고 세계관이 바뀌고 했을런지 모르겠다. 어쩌면 전작들이 주로 10~20대 콘솔 유저들의 억눌린 폭력성을 대리만족시켜주는 걸로 돈벌이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일종의 아재 게임으로서 조금 다른 종류의 욕구와 세계관을 만족시켜주는 돈벌이로 사업이 전환된 것이겠지. 어차피 콘솔게임 시장 자체가 그렇게 '다변화'되는 (예전에야 콘솔 유저들이 대략 10~20대 너드들에 한정돼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을 테니) 추세일 것이다.


  나한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게임의 서사가 '흑역사'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사실상의 리부트라고 해도 좋을 '갓 오브 워'는 다른 리부트 프렌차이즈들처럼 기존의 이야기들을 지우거나 뜯어고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뒤로 갈수록 멀미만 유발하던 무의미한 학살극이었지만, 그래도 주인공의, 이 시리즈의, 그리고 유저들의 실제 '역사'였고 경험이었으며, 신작이 기획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인간의 경험이란 게 원래 그렇다. 지나고 보면 99%는 무의미한 흑역사에 가깝지만, 그게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지나온 흑역사를 이불킥하며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리부트작은 '툼레이더'나 '스파이더맨' 프렌차이즈처럼 흑역사가 없었던 척 새로 그리거나 지금 입장에서 편리한 것만 취사선택해 가져오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그냥 인정한 채로 거기에 대한 극복 서사를 새로운 상품으로 만들어낸다. 실컷 죽여대는 걸 팔아먹다가 여의치 않으니까 죽여대던 걸 극복하는 서사를 다시 팔아먹는 영리한 상업성이기도 하고, 이게 다른 프렌차이즈보다 더 영리하거나 현명해서라기보다 '신화'라는 배경을 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유, 배경이야 어떻든 부끄러운 경험을 지우는 대신 또 다른 시각과 또 다른 경험을 덧대어서 더욱 다층적인 큰 이야기로 쌓아올리는 시리즈란 건, 그걸 실시간으로 즐긴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한 살씩 나이를 더 먹어가며 과거의 이불킥 기억들 처리에 고민하게 되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아마도 이 게임을 즐긴 다른 올드(?) 유저들도 비슷한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는 예전의 이불킥 서사들을 지워버리거나 왜곡하는 대신에, '그것을 딛고 올라가는 더 성숙해진 나'라는 서사로 자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갓 오브 워'의 주인공도 그게 안 되었다면 그냥, 지보다 만만해 뵈면 아무나 후려쳐대는 1호선 진상 할배랑 다를 게 없어졌을 것이다.




p.s) 다만 2005년판을 즐길 때나 지금이나 아케이드가 안 되는 이 곰손은 바뀌지를 않아서... 엔딩이야 어찌저찌 봤어도 발키리 미션은 감당이 안 되어 반 포기 상태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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