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들 - 죽은자의, 피프티, 상상도 책들이 쌓인 방




1.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기대 이하. 소재 면에서 대단히 흥미롭긴 한데, 저자가 이런 소재를 가지고 정리 내지 르뽀를 하는 게 아니라 '문예'를 하고 있다는 게 나한테는 별로였다. 굉장히 다채로운 사연들이 나오는데, 정작 중요하게 다뤄지는 건 그 사연들이나 사연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그들의 사연에 묵묵한 척 말없이 공감하고 성찰하는 나' 쪽이다. 자아도취가 좋은 작가의 기본 성향인 건 분명하지만, 이런 책에서 기대되는 것은, 적어도 내가 이런 책에 기대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작가는 죽음과 관련된 현장을 책임지는 과묵한 전문가인 척하면서, 자꾸만 각종 미사어구로 지면 앞에 폼을 잡으면서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전시한다. 귀엽게 봐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모든 챕터에서 혼자만의 래드카펫을 만들고 연출사진을 셀카로 보여주니까 나중에는 신물이 났다. 기자가 주인공이 되는 뉴스, 심판이 1등을 하는 시합, 아이보다 엄마가 더 예쁨받아야 하는 육아 현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자꾸 그러니까 사연의 객관성, 진실성에도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사연들 중 가장 재미있던 이야기, 자살을 계획하고 관련된 정보를 얻기 위해 업체로 연락해온 여성을 힘들게 경찰에 인계한 후에 받았다는 문자가 "나쁜 시키". 글세, 자살 시도가 무산되고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사람이 저렇게 애정이 담긴 멘트를 칠까? "개새끼"나 "씨발새끼야" 였어야 맞지 않을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의 사연의 진실성을 폄하하는 것도 옳은 자세는 아니겠지만, 그런 의심이 들 만치 저자의 자기애와 에고 전시는 책 전체에 과도하게 덧칠되어 있었다.


2. 피프티 피플 (정세랑)

  정세랑은 훌륭한 이야기꾼이라 생각하는데, 이 책은 그 장점이 충분히 실현된 경우는 아니라 해야겠다. 일단 50명씩 되는(실제로는 51명이었다나?) 주인공(?)들의 시점을 나열해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이, 과욕이다. 아니, 적어도 이 책의 경우에는 결과적으로 과욕이 되었다고 해야 하려나. 그런 방식은 마틴 옹조차도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 시도했다가 (전세계적 성공은 거두었으되) 결국 작품의 완결을 내지 못하게 되지 않았던가. 몇몇 꼭지에서는 산뜻한 매력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너무 얇고 피상적인 이야기에 그치고 있는데다, 전체가 큰 그림으로 완성되지 않았고, 나름 이야기를 맺으려는 마지막의 화재 장면은 그냥 뒷수습을 위한 의무방어전 같아서 지루했다. 책을 끝까지 읽어도 도대체 왜 굳이 50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의 관점과 이야기가 필요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단편집으로서도, 50개 조각으로 구성된 장편으로서도 큰 매력은 없는 범작이었다. 정세랑은 분명히 좋은 작가이지만, 좋은 단편 작가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3.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켄 리우가 디게 유명한 작가라던데, 게으르게 살다 보니 처음 접했다. 훌륭한 SF들이 많이 엮여 있는 작품집이었다.
  특히 '싱귤래리티 3부작'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의 자아 전체를 일종의 가상세계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한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벌써 많이 진부해진 편인데, 켄 리우는 이 설정을 극단화하여 데이터베이스에 업로드된 고위 차원의 신인류들과, 물리 세계에 남아 천천히 멸망해 가는 구인류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다. 3부작에 일관된 정서는 이 과정에서의 상실감인데, 근대적 물질문명의 '인간성'이 사라지는 과정을 이야기 속에서 고통스러울 만치 직시한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런 변화가 단순한 멸망이나 피살이 아니라, (이 이야기 속에서)인간의 진보이자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 인간성의 쇠멸은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필연이자 최선의 선택인데, 문제는 그 신천지에 우리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는 구시대의 인간성 개념에 근거한 우리의 자아는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작품집의 다른 단편에서 직접적으로 이야기되었듯이, 근본적인 진보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어쨌든 구시대에 속한 우리는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모세와 같다. 그 진보가 정말로 근본적인 것이라면, 우리 자신이 진보를 통해 극복되어야 할 대상(적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멀쩡한 우리 자신을 유지한 채 그곳에 낄 수 있다면, 그곳은 그냥 이곳의 연장선, 구천지의 재탕일 뿐이지 진짜 신천지일 수 없다.

  켄 리우는 이런 구시대인의 슬픔을, 과도한 자기 연민 없이 훌륭하게 다루었다. 특히 이제 변명의 여지 없이 기성세대가 되었음을 실감하는 시점에서 작품 속 구시대인들이 보여주는 존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에 정치적 혼란을 낳고 있는 큰 이유도 대충 나와 내 선배들의 세대가, 구시대인임에도 여전히 젊은 척 구시대의 권력과 신시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책임 없는)자유를 동시에 가지려고 노욕을 부리기 때문이 아니던가. 더 존엄을 갖춘 퇴장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벌써 그런 위치에 있다. 내 세대도, 어쩌면 한국 사회 자체도, 경우에 따라서는 근대성의 인류 전체 역시.





 

1 2 3 4 5 6 7 8 9 10 다음